4집 내셨을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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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4집 앨범을 발표하고 보다 성숙한 음악으로 자신을 그려내고 있는 조규찬. 지난달에 나누었던 그와의 음악 이야기들. 9월에 나는 그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졌다. 그의 삶에 있어 음악이 차지하고 있는 상당수의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늘 환한 웃음 뒤엔 어눌한 그림자가 드려져있는 조규찬. 함께인듯 하면서도 혼자인 사람. 홀로 서 있는 듯 하면서도 함께 걸어가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늘 그렇듯 스치듯 지나치며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들을... .


취재 : 이화진 / 사진 : 최재훈(프리랜서)

SECTION ONE : 홍대앞 주차장

약속 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조규찬은 의례히 찌그러진 순백빛 세피아에서 쫙빠진 물개빛 레간자를 타고 눈앞에 나타났다.

@어. 차 바꿨어요.? (안부 인사가 먼저 나왔어야 했는데 차에 정신이 팔 려 미처 묻지 못했다)
어.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아니. 차가 바뀌다니? 4집 앨범 잘 나가나봐요.
지금 약 올리시는 거죠? 이제 7만 정도 나갔는걸요. 판이 잘나간다기 보 다는 차가 잘나가고 있죠. 하하. 예전에 타던 차가 좀 오래 됐거든요. 그 래서 그냥 바꿨어요.


@세피아와 레간자라...좀 심한 격찬데...?
소리가 품격을 말하잖아요. 제 품위로 보아서는 이것도 좀 약하죠. 농담 이구요. 별 차이 없어요. 단지 차이가 있다면 흰색과 검정색, 그리고 기름 값이 좀 더 든다는 것, 앨범이 잘 나가야 하는 이 시점에서 물개같이 차 만 미끈해 가지고 차만 잘 나간다는 것 외에 다른 건 달라진 게 없어요. 운전하는 사람은 여전히 잘생겼다는 것, 그리고 차안은 여전히 지저분하 다는 것 등등이요.


SECTION TWO : 홍대 캠퍼스 (학교라...)

세피아와 레간자 운운하다가 우리는 사진 촬영을 위해 홍대 캠퍼스 안으 로 들어갔다. 그것도 잘 나가는 레간자는 그냥 주차장에 모셔놓고 덜덜거 리는 우리의 사진기자 르망을 몰고서는. 게다가 조규찬과 그의 매니저, 코 디 두 명, 취재원과 운전하는 사진기자까지, 어마어마한 거구들 여섯 명이 함께 승차한 채로. 유난히 조각 물이 많이 배치되어 있는 홍대에 들어서 자 문득 그가 미술학도 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참, 미대나왔죠?

네, 동국 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죠.

@와우! 졸업했어요? 데뷔하면서 학교 다녀서 졸업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사실 못할 뻔했어요. 원래 학교를 잘 못 다녔었는데 그래도 4학년 땐 열 심히 다녔어요. 하지만 졸업 작품을 위한 작업은 학교에서 할 수가 없었 죠. 그래서 스케줄이 끝나면 아예 화실을 경영하는 친구 작업실에 가서 밤새곤 했어요. 졸업 작품인 경우 규정이 300코(보통 커다란 창문의 3배 정도 크기) 이상 해야하거든요. 그렇게 오일 페인팅을 하려면 그리는 데 만 해도 한달 이상이 걸려요. 그러니까 저는 거의 3달 이상을 고생한 거 죠. 그렇게 해서 작품을 제출하긴 했는데 결국 전시하지는 못했어요. 학교 작업실 사용하고 전시하는데 필요한 백만원이 넘어가는 돈을 내고도 못 걸었죠.


@이해가 안가요. 근데 어떻게 졸업했어요?

그때 저를 굉장히 미워하시던 교수님 한 분이 계셨거든요. 오원배 교수 님이라고. 3학년 땐가? 이미테이션(Imitation) 식으로 작품을 한 적이 있 었는데 그 교수님께서 보시자마자 영화 간판 그리는거냐구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그랬죠. 무슨 말씀이시냐구요. 이것도 제 생각이 들어있는 제 작품 이라고 했죠. 그러자 건방진 녀석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부터 완전히 찍힌 거죠. 너무 권위적인 교수님이셨어요. 하여튼 그래서 학점은 주고, 전시는 못하게 하고 그랬어요. 결국 졸업은 한 셈이죠.

@지금도 그림 가끔 그려요?

아니요. 거의 못해요. 원래 제가 그래요. 하나에 빠지면 다른걸 못하거든 요. 특히 요즈음 같이 바쁘게 지내는 때는 그릴 생각을 못하죠.

@어릴 때부터 그림이 좋아서 그림쟁이가 됐고 지금은 가수라는 다른 다 른 길을 가고 있는데 미련은 없어요?

왜요, 많이 남아있죠. 어떨 때는 아주 가끔이지만 못 견디게 그림을 그리 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음악하기 싫을 때요. 특히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저의 사적인 모습까지 남들에게 가식거리가 될 상황일 때, 군중 속에 속 해 있는 한 명 한 명의 잔인함에 혀를 차며 거부감을 느끼게 되요. 이전 에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었던 적이 있잖아요. 진실이 완전히 왜곡된 채로 언론 플레이에 의해서 완전히 매도되었었죠. 그럴 땐 혼자 화폭에 묻혀 작품과 일대일로 마주앉아있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대학 시절을 굉장히 재미있게 보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학교 생활을 떠올렸을 때 기억나는 거라고는 공강시간에 혼자 빈 강의실에서 음악을 듣거나 도서관에 가서 읽기 싫은 책 잃었던 것밖에 재수없다구요. 선입견이죠. 그러니까 애들이 편견을 가지고 저를 대한 거 죠. 저는 정말 아무런 사심 없이 친하게 다가가면 여자 애들이 그래요. 가 수랍시고 여자 애들한테 집적거린다구요. 그래서 늘 혼자였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졸업할 때쯤 1학년 후배들이 저를 많이 따랐어요. 수업 빠지게 되면 과제물이나 필기 같은걸 일일이 체크해서 저한테 전해줬죠. 그 후배 4명은 저한테 정말 잘해 줬어요. 덕분에 학점도 땄구요.

@여자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그래도 기억나는 여학생이 있을 것 같아요.

4학년때 \'진로 선택과 발달\'이라는 과목이 있었어요. 저만 미대생이었고 모두들 사범대 학생들이었죠. 그 중에 한 여학생이 절 좋아했었어요. 아주 예쁜 여학생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왜 날 좋아할까를 생각해 봤을 때 역시 유유상종이구나..뭐 이런 거죠..하하하(딱따구리 웃음소리). 근데 그 수업 진짜 예술이었어요. 카운슬링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그 방식이 맥주 마시 면서 프리토킹 하는 거였거든요. 그때 그 여학생이 왜 절 좋아했었는지 아직도 의문이에요. 아까 제가 말씀 드렸듯이 4학년 때가 제일로 열심히 학교 다닐 때거든 요. 1년만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새벽 늦게 집에 들어와도 잠 안자 고 바로 학교에 갔어요. 그리고 차안에서 자다가 수업시간되면 모자 눌러 쓰고 들어가서 필기도 꼼꼼히 하고 과제물도 필요이상으로 열심히 하고 그랬죠. 그렇게 열심히 들었던 과목 중에 \'시와 언어\'라는 과목이 있었어 요. 그 수업때 들었던 강의 내용들이 아직도 제 안에 남아있어요. 제가 음 악 하는데 있어서도 정해진 운율이나 드러나지 않는 시의 의미와도 같은 노래들을 지향하는 것도 그때의 영향 때문이에요.

SECTION THREE : 모듬 스테이크 + 부대찌개 + 그리고 두꺼비(?)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며 한껏 폼을 잡은 그의 컷을 잡아내고 우리는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남은 인터뷰를 위해 장소를 고민하다가 결국 저녁을 해결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의 외관상 비춰지는 분위기 로 보아 칼질(?)을 해야만 할 것만 같았는데 이게 웬일? 그가 우리를 안 내한 곳은 부대찌개 집이었다. 음식점으로 들어선 우리는 방바닥에 철퍽 주저앉아 모듬 스테이크와 부대찌개를 주문한 후 남은 이야기를 계속 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라는 곡으로 참여했었죠? 그때 처음으로 삼형제가 함께 노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네. 그랬죠. 콘서트 때에도 같이 노래할 기회가 없었는데 기획가 생긴거 죠. 좋은 편곡의 곡과 녹음에 저희들이 참여했다는 느낌이 즐거웠고, 또 형들이랑 함께 노래한다는 자체가 푸근했어요. 그래서 이번엔 스스로 저 희 삼형제의 음반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은 음악을 만드는 단계인데 내 년쯤 되어서 발매할 생각이에요.

@그렇군요. 그럼 형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규만씨나 조규천씨에 대해 서도 이야기 해줘요.

저희 큰형 같은 경우는 굉장히 백인 팝 음악의 정서에 심취해 있어요. \' 비지스\' 같이 약간 올드한 백인 음악 정서에 맞는 심플한 팝들을 많이 듣 고 그런 음악을 하는 편이죠. 또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에요. 저 희 작은형인 조규만씨는 작편곡 위주로 다른 가수들의 앨범 작업에 많은 참여를 하고 있고 지금 2집 앨범이 나와있지만 홍보 문제 때문에 여러분 과 많이 만날 기회가 없었을 뿐이구요 음악 스타일을 보면 뭐랄까 록 적 인 바탕 위에 시류를 타지 않아 오랫동안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는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규찬씨 같은 경우는 어때요?

음악에 관해서는 별개로 생각해요. 각자의 음악은 그들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서로 터치를 안하는 편이죠. 그 외에는 그냥 뭐 형과 동생이에요. 사실 형들이 오히려 제 눈치를 봐요. 제 기분을 살펴주는 거죠. 그렇다고 형들이 그렇게 착하다는 뜻은 아닌데 하하, 그냥 제 성격을 아니까 어느

@어머님은 어떤 분이세요? 이전에 가수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머님은 <내고향>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가수셨죠. 지금은 신앙생활을 하 시지만 항상 자율이라는 것을 저희들에게 보장해 주시는 현대적인 어머니 상을 지니신 분이예요.

@아버님은 작고 하셨죠?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몸도 별로 안 좋으셨지만 그 당시에 믿었 던 친구 분한테 사기를 당하셨어요. 아버님 성격이 워낙 그러세요. 무엇인 가 하나에 집착하고 털어 버리지 못하는 분이셨죠. 그것 때문에 신경이 너무나 약해져 계셨어요.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혹시 그 이후에 아버님 때문에 힘들어했던 때가 있었어요?

라면서 겪는 아주 특이한 느낌들이 있었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 는 사실들이요. 그럴 때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저를 잘 다져 준 것 같아요. 스스로 방황한 적도 많지만 어느 순간엔가 아주 자연스럽 게 제가 힘들어하는 부분들을 받아들이게 됐죠. 래서 과감히 외쳤다.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이요"라고. 이내 투명한 소주잔에 그보다 더 투 명한 액체가 넘쳐 났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투명한 그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규찬씬 참 애매모호한 사람 같아요.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특히 규찬씨 는 밝고 어두운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원래 제 성격이 그래요. 사람들하고 쉽게 어울리질 못하죠.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각이 져 있 죠. 둥글진 않아요. 제가 보기에도 사람에 따라서 깊이와 차이가 심하게 드러나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건성으로 친절을 베풀면서 두루두루 친한 사람들이요. 전 그런 건 못해요. 자랑은 아닌데 그게 제 타고난 체질인 걸 요? 대신 한 번 같이 길을 가는 사람은 끝까지 저와 함께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슬픔에 따른 감정의 기복이라는 건 제게 없는 것 같아요. 단지 편할 때와 화가날때의 구분이 뚜렷하죠. 말도 안되는 어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숨길 줄을 몰라요. 안 내가 잃어온 사람들이 많이 그립다는. 그 글에 대해 듣고 싶어요. 요.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친했던 어릴 적 친구라 할지라도 서로 못 만나 가지의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이 멀어지고 잃게 되는 게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사라지지 않는 느낌들로 간직하려는 마음들이 희박해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썼어요.

@사람들과 함께여서 정말 감사하고 싶을 때가 누구에게가 있잖아요. 규찬씬 어때요?

저도 물론 그렇죠. 특히 이번 4집 앨범 작업하면서 곡을 선물해준 김형 석씨나 이철원씨 그 두 분에겐 정말 감사해요. 원래 그래요. 녹음할 땐 항 상 날카로워지고 힘들거든요. 혼자 못 이겨내곤 하죠. 항상 그래왔듯이 이 번 작업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형들이 곁에서 격려해 주고 따뜻한 말을 해줄 때 정말 곁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반대로 인간이라는 대상에게 단절감이 느껴질 때는 언젠가요?

아니지만 일 관계에 얽혀 있는 상황 때문에 사람을 사람으로 서로 대하지 못하고 권위적인 성질을 앞세워 마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들처럼 행 동하는 사람을 볼 때,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 서있어야만 할 때, 그때가 회의적이죠.

@참, 요즈음 아침 일찍 영어 학원에 다닌다면서요?

네, 여러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요. 다양한 언어를 가졌다는 세요. 여행을 갔는데 그네들 속에 깊숙이 다가가고 싶어요. 아무리 돈이 스 자체를 직접 느끼면서 대화를 해야 만이 그 속에 들어가서 그네들의 문화를 함께 그리고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거죠. 그런걸 못한다는 건 참 답답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니는 거죠. 아직 안 늦었을 것 같아요. 꾸준히만 한다면.

@문화 하니까 생각이 난 건데, 우리 나라의 청소년 문화에 대해서는 어 떤 견해를 가지고 있어요?

일단은 음악의 대중문화로 좁혀서 생각한다면 대중문화를 대하는 청소년 문화가 매스미디어의 역반응 일수도 있겠지만 너무 소비적인 것 같아요.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빨리 변해 버리죠. 또 음악을 음악으로 듣지 않고 어느 하나의 시류나 패션, 유행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 해 정서적으로 탐닉하는 것이 옛날보다는 많이 부족해진 것 같아요. 물론 깊이 음악을 듣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지만요. 그건 청소년들만의 책임은 아닌 듯 해요. 방송을 만드는 분들, 문화 사업하는 분들, 또 음악을 하는 당사자들, 그리고 듣는 이들 이렇게 모든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이 서로 좀더 나아가서 생각한다면 대중 문화를 이끌어 가고있는 대중들이 그 문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규찬씨도 콘서트를 자주 갖는 편이니까, 요즈음 성행하고 있는 콘서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리고 규찬씨 콘서트는 언제쯤 하게 되나요?

콘서트 문화가 발달되고 있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과연 상업적인 목적만 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음악적인 욕심으로 하는 것이 몇 개나 될까 하는 것을 봤을 때 조금 회의적인 면도 없지 않아요. 음악 외적인 요소, 어떤 해프닝을 위주로 하는 콘서트 있죠? 물론 재미가 중요하고 연 출이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음악적인 완성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그런 부분들이 간과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리고 이제 4집 앨범이 나왔으니까 아마도 12월쯤에는 콘서트를 하게될 것 같아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좀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그건 아마 음악에 대해서도 가능할 수 있을 테고 또 제 음악을 소비하는 혹은 듣고 함께 공유하는 대중들이 제 음악 색깔에 철저하게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자유로움이죠. 어떤 광대 느낌을 가져다주는 연예인이기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음악이 좀더 성숙 해지고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어서 내 안에서 자유로운 자유인으로 대중 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자유가 또 다른 일면으로 드러난다 에 있어 많은 것들을 보고 싶거든요. 적어도 제가 가능한 볼 수 있는 것 들이 있다면 말이에요.

@오늘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수고하셨어요. 제 얘기 들으시느라구요. 안녕히 가세요.



늦은 저녁 따스한 사람과의 만남은 이전에 마셨던 알코올의 기운보다 더 훈훈하게 내 몸을 감돌았다.

음악을 위해 내가 산다는 생각.....
이번 작업을 통해 달라졌다
내 삶을 위해 음악을 한다는 생각.....
그 동안 내가 잃어온(?)

허무함을 느끼기 위한 고독 위에 고독.
사람들이 느끼는 자괴적인 고독을 경계해야할 계절, 가을!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를 돌아본다.
감성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에 의해 내가 흔들리면 쉽사리 무너지는 계절, 가을!
때로는 자신을 다른 관점에서 볼 줄 아는 또 하나의 시각이 필요할 것 같다.

-조음사에 올라온 거 퍼왔습니다~^^

댓글목록

조수연님의 댓글

조수연 작성일

제가 가지고 있는 거랑 같은 기사네용...ㅋㅋㅋㅋㅋ
 넘 길어서 못 올렸는데......  여기서 보다니..ㅋㅋㅋㅋ

박혜경님의 댓글

박혜경 작성일

재밌게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