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의 시선
본문
필요악, 불필요한 경쟁이 빚은 이기심의 산물, 혹은 아이러니
돈이 많으면 음악하기 편하죠. 예를 들면, 편곡할 때 컴퓨터나 샘플링을 이용하는 것과 악보만 보고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들리는 소리를 직접 확인해가면서 작업하는 거랑 자신의 상상만으로 작업하는 거랑은 천지 차이니까. 모즐이나 샘플러 등의 비싼 장비를 쓸 수있다면 더 좋죠. 그러니까 돈이 있으면 편한 건 사실이에요. 렌탈 스튜디오의 경우에도 한 프로(보통 3시간을 한 프로라고 하거든요) 빌려서 빠듯하게 작업하는 것보다는 세 프로 정도 빌려서 녹음하는 중간에 그때그때 확인해가면서 작업하는 게 훨씬 나아요.
그렇다고 모든 가수들이 그런 비싼 장비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외관상으로는 \'가수\'라는 직업이 돈도 많이 벌 것 같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겉으로 보여지는 건 아주 작은 비율에 해당하니까. 이를테면 빙산의 일각이라고나 할까? 샐러리맨들과 다를 게 없어요. 설령 차이가 난다고 해도 그만큼 세금도 많이 내고, 악기나 장비 구입에 투자를 하니까 따지고 보면 큰 차이는 없는 거죠. 또 직업상 증빙 서류를 갖출 수 없는 지출이 많아요. 샐러리맨들은 월급 명세서가 정확하고 세금도 정확하게 계산되니까 확실한 서류가 갖추어지지만, 가수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들을 제외하고 꾸준히 자기 음악을 하는 가수들의 생활은 아주 평범해요. 크게 다를 것 없어요.
저 같은 경우는 정기적인 수입은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거예요. 1년에 한 번 하는 공연, 대학 축제, 다른 가수들의 앨범에 코러스, 세션, 작곡 등으로 참여해서 버는 돈이 전부니까. 한 달에 쓰는 돈은 100∼150만원 정도? 어머니하고 같이 사니까 집안의 생활비도 대야 하거든요. 자동차 유지비, 공과금 등을 모두 포함해서 그 정도.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빚이 많아져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가수가 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고요.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받은 상금도 그렇고 앨범 낼 때마다 받은 전속 계약금같은 목돈도 모두 어머니께 드렸어요. 그나마 그것도 세금이 많아서….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집안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에요. 어머니께서 많이 힘드셨죠. 학창 시절에 참고서 산다고 돈 받아서 영화도 보고 듣고 싶은 음반도 사고 그런 추억들이 한 두번씩은 다들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엄두도 못 냈어요. 필요한 것도 못사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 적이 한 번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아버지 지갑이 열려 있는 걸 봤는데 그 속에 있는 100원짜리 동전을 보고 도벽이 생긴 거에요. 오락도 하고 싶고, 과자도 먹고 싶고 그랬으니까. 처음엔 두려웠죠, 죄책감도 들고.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저도 모르게 대담해지더라구요. 아버지께서는 그 사실을 모두 알고 계셨는데도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그만두기를 기다리셨어요. 한동안 그러다가 어느날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아버지 몰래 안방에 쪽지를 두고 나왔거든요. 그리고 신발을 신고 나가려고 하는데, 저를 부르시더니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다. 먼저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구요. 정말 계속 울었어요.
빈부의 격차요? 글쎄, IMF 이후에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매스 미디어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매스 미디어라는 게 커다란 허구의 메신저라고 생각하거든요. 광고의 본질은 대중들에게 돈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에 있다고 봐요. TV에서 광고 모델들은 행복을 흉내내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잖아요. 화면에 보여지는 행복을 그대로 소비자들에게 전달해 줄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니까요. 소비자들은 물건을 구입할 때 행복까지도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그들은 물건을 살뿐이지 행복까지 살 수 있는 건 아니죠. 매스 미디어는 바로 그런 광고 수입으로 연명하고 있는 거고, 그래서 계속적으로 허구화된 이미지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거고. 광고는 돈을 벌기 위한 도구, 혹은 물건을 팔기 위한 도구 이상의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종의 경쟁으로 포장된 폭력이 아닐까요? 매스 미디어에 의해서 소비자들에게 마치 그게 선인 것처럼 주입된 거라고 봐도 될 거에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물질만능주의를 낳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낳았고, 그 때문에 빈부의 격차까지도 심화된 거죠.
TV 다큐멘터리에 가끔 어려운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또 시청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그런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하는 방송에서조차도, 시청자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프로조차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방송을 위해 출연한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고, 어려운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거든요. 그런 걸 보면 나눔에 대한 절실함을 느껴야 하는 때가 요즘인 것 같아요. \'왜?\'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져야 해요. 왜 사는지, 왜 돈을 버는지, 무엇이 그들을 다른 인류로 만들어가는지. IMF는 저한테도 큰 타격이었어요. 앨범 판매량이 많은 가수들은 아쉽기는 했겠지만, 그걸 피부로 느끼진 못했을 거에요. 200만장 파는 가수는 150만장, 100만장 팔았다고 해도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저같은 경우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굉장히 많은 가수가 아니니까 앨범 판매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저 저를 좋아해 주는 소수의 팬들이 있을 뿐인데 IMF 터지고 나서 그 적은 숫자의 팬들마저도 줄어든 거에요. 그러니까 기본적인 손익 계산이 안돼요. 한 1년 정도는 그래서 힘들었구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아직도 많이 좋아진 건 아니에요. 소위 잘 나가는 가수들은 적지 않은 돈을 프로모션에 쏟아 붓고, 앨범 많이 팔아서 번 돈의 많은 부분을 또 프로모션에 써 버리거든요. 요즘엔 마케팅이나 프로모션도 돈에 의존하는 게 상식화되어 버렸어요.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돈은 필요악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고, 가진 정도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인류가 창조되기도 하잖아요. 돈으로 사랑을 사기도 하고, 돈에 돈 여자들은 옷을 벗고 옷을 벗은 여자 앞에 돈 남자는 돈을 쏘고. 돈이라는 건 경쟁이라는 멋들어진 말로 포장된 이기심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가치와 얼굴을 갖기도 하니까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하구요. 아이러니죠.
작년에 5집 발표했거든요. 그래서 좀 바빴어요. 12월 23일부터 올해 1월 2일까지는 대학로 컬트홀에서 공연도 했구요. 지금은 임창정 씨 6집 작업하고 있어요. 록 레코드에서 \'소중한 너\'를 리메이크하자고 해서 그 작업도 진행 중이에요. 여자 보컬은 여행스케치의 \'윤사라\'라는 분이 해주실 거에요. 올 가을까지는 개인 활동을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혹시 5집의 후속곡을 홍보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직 미지수구요. 지금은 영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마흔 살이 되든, 쉰 살이 되든, 아무리 늦어도 유학을 갈 생각이에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요. 그동안 쉴 틈이 없어서 그랬는지 몸이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당분간은 영어 공부하면서 쉬고 싶어요. 바램이 있다면 제가 가진 음악적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용기도 생겼으면 좋겠고, 이기적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출처 - http://www.bounce.co.kr/sub/200002/special1_money/jo_kew_chan/jo_kew_chan.htm
댓글목록
이용준님의 댓글
이용준 작성일
기사글에는 저 혼자 글남긴게 많네요...ㅜㅜ
사실 이런 글들이 젤 중요한 거라구 할 수도 있는데......
찬님은 역시 생각이 많은분이시군여....솔직히 이거 보구 좀 부끄럽습니다....
돈에 관한 찬님의 이런 생각....저두 많이 해본 생각들인데...그래두 찬님은 돈은 필요악이라구 못박으시는거....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만.....
신애님의 댓글
신애 작성일
'그리고 용기도 생겼으면 좋겠고, 이기적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저도 찬님 처럼 용기있고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꺼예요..^^;;
정말 찬님에게선 배울점이 많은 것같아요..^^
김송미님의 댓글
김송미 작성일음악적 재능 뿐만 아니라.. 가지고 계신 마음 사상까지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분입니다.
조은채님의 댓글
조은채 작성일글게..말에입니당... 괜히.. 숙연해 지네염...- -
박세원님의 댓글
박세원 작성일
와..고개가 끄덕끄덕..
'필요악' 이라.. 예리한 지적인 것 같아요.
정말..'돈'이라는 게 무엇인지.